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스토프 전투 (문단 편집) === 히틀러의 고집, 독일의 후퇴 === [[파일:003소련 (1).jpg]] 하지만 이미 사방에 소련군이 모여들고 있어 언제 로스토프가 뚫릴지 모를 상황이었기에 룬트슈테트는 심각하게 후퇴를 고민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등따뜻하고 배불렀던 히틀러는 로스토프 점령에 크게 고무되어 OKH를 통해 마이코프로 계속 진격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하지만 소련군의 반격은 이어지고 있었고 도심 점령지로 향한 독일군의 보급은 완전히 차단되다시피 하였다. 클라이스트는 만일을 대비하여 제3장갑군단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일단 좌측에 있던 제14장갑군단을 뒤로 후퇴시켰다.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빡쳐서 길길이 날뛰었다. 룬트슈테트는 그런 히틀러를 설득하려 했지만 히틀러는 공중 보급 줄테니 버티라는 명령만 반복했다. 그 사이 소련 제56군은 돈 강을 건너 로스토프 남부로 치고 들어왔다. 물량에서 현저히 밀린 독일군은 점차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결국 28일 클라이스트는 히틀러의 명령을 상큼히 무시하고 직권으로 철수를 지시했다. 제3장갑군단이 탈출하자 나머지 기갑군 또한 후퇴했다. 소련의 추격이 계속되자 룬트슈테트는 클라이스트에게 제1기갑군을 안전지대인 미우스 강까지 완전히 후퇴하도록 조치하였다. 놀란 히틀러는 즉시 현지를 사수할 것을 명령했지만, 룬트슈테트는 이를 씹고 사령관직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항명했다. [[파일:005히틀러.jpg]] 빡친 히틀러는 남부집단군 소속 6군을 이끈 [[발터 폰 라이헤나우]]에게 집단군 사령관직을 겸임시키는 한편 조인트를 까기 위해 친히 마리우폴까지 날아갔다. 하지만 라이헤나우와 현장을 직접 겪은 제1친위사단 지휘관 제프 디트리히의 보고를 받고 정신을 차려, 미우스 강을 경계로 전선 구축 후 부대를 재편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전투는 종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